가장 위험한 놀이터는 '위험이 없는 놀이터'다
과잉 안전주의가 아이들의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 본질적으로 놀이는 안전하며 편익을 주는 활동이다. 아이들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안전을 배운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넘어졌다는 소식은 언제나 부모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놀이터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얼마나 안전한가"를 묻는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높이를 낮추고, 움직임이 빠른 놀이기능을 없애고, 다양하게 오를 만한 구조물을 단순하게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야 한다. "위험을 모두 없앤 놀이터는 과연 안전한가", "아이의 도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또다른 위험한 놀이를 선택할 가능성은 없는가"
아이가 몸을 움직이고, 망설이고, 선택하고, 스스로 한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놀이터는 안전할 수는 있어도,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위험(risk)과 위해요인(hazard)이다. 위해요인은 날카로운 모서리, 부서진 시설, 관리되지 않은 바닥처럼 심각한 부상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원인이다. 이것은 어른이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반면 위험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하는 불확실성이다. 얼마나 높이 오를지, 어느 속도로 내려올지, 어디까지 도전할지는 아이가 판단하는 몫(선택적 위험)이다. 더욱이 어린이는 왕성한 호기심 충족과 재미를 찾으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엉뚱하면서도 다 양한 놀이방법을 탐색 및 구하게 된다. 설치된 놀이기구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놀이에 이용하기 도 한다. 즉, 어른의 상상을 초월한 놀이방법을 즐기면서 도전을 하고 호기심을 채워나간다.
그러면서 우리의 어린 시절 놀이처럼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의도치 않게 겪게 되는 부상 경험은 우리에게 있어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위험은 어린이의 성장과 경험에 도움을 주는 “놀이가치”의 하나가 된다.
그래서 어린이 놀이에서 위험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루어야 할 가치가 된다. 아이는 위험을 경험하며 겁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실패 뒤에 다시 시도하는 힘을 기른다. 작은 상처를 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의 불확실성을 읽고 대응하는 감각을 익히는 일이다. 성인의 역할은 아이 대신 높이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썩은 나뭇가지를 치우고, 위험한 결함을 없애고,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데 있다. 보호는 통제가 아니라 준비여야 한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위험이 아니라 과잉 안전주의일지 모른다. 모든 위험을 없애려는 태도는 아이를 안전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위험을 다루는 능력을 빼앗는다. 놀이터는 온실이 아니다.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갈 힘을 기르는 장소다. 결국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이 전혀 없는 환경이다. 어린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균의 공간이 아니라, 위해는 줄이고 도전은 남겨둔 놀이터다. 놀이가치로서의 위험을 인정할 때, 비로소 놀이터는 아이를 쉬게 하는 곳이 아니라 자라게 하는 곳이 된다.